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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이면 환자들이 안심하고 통증치료 받을 수 있을까 ?
최중립  2009-03-01 10:00:38, 조회 : 14,370, 추천 : 3221

필자는 언제부턴가 남에게 통증클리닉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었고, 필자에게 배움을 얻기 위해 대기하는 젊은 의사들까지 생겨나고 있다. 처음부터 필자는 통증클리닉을 하겠다고 생각하거나, 남을 가르쳐보겠다거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필자의 의사초년생 때에 마취과를 선택했던 것은 그 당시에 인기 높고 장래에 높은 수입이 보장되는 진료과목 보다는, 의사가 되었으면 신체의 일부분만을 치료하기보다는 인기는 없더라도 생명을 직접 다루는 것이 의사의 본분이라고 생각해서 마취과를 선택했을 뿐이다.

요즘 젊은 의사들이 이런 소리를 들으면 미쳤다고 생각하겠지만 마취과를 선택하기로 하고, 의국1년 선배를 만났을 때에 하루걸러 당직을 해야 하고 당직을 하면 밤샘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를 듣고 가슴이 설레고 해볼 만한 과(科)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1년차 레지던트동안은 하루걸러 당직을 하면서 밤을 꼬박 새우는 일이 많았지만, 하루 밤을 꼬박 새우면서 9건의 수술을 세 차례를 해보았는데, 10건을 채워보고 싶었지만 그 기록을 세우지 못해 서운했지만 힘들다고 해서 후회해본 일은 없었다.

그 당시에는 마취과의사를 하려면 10 hands, 10 eyes, small stomach, large bladder를 가지고 있어야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집도하는 의사들은 수술을 중단하고 쉬었다 할 수도 있지만 마취는 일분일초도 쉴 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편안하게 마취해줄 수 있는 ventilator나, 맥박이나 혈압을 자동으로 점검해주고, 혈중산소 분압 치를 나타내는 장비가 없던 시절이었다. 졸음을 쫒기 위해 허벅지를 꼬집어 가면서 마취 백을 잡고 마취를 해야 했고, 5분 간격으로 혈압과 맥박을 점검해서 마취기록지에 적어야하고, 수액이나 혈액을 직접 주입해야하고 수술부위에 따라 조명도 맞추어 주어야하기 때문에 잠시도 쉴 수가 없었다.

1976년에 전문의 자격을 따고 국군통합병원에 복무할 때에는 마취과 과장인 필자혼자서 4개의 수술실을 동시에 감당해야만 했었다.

그때부터 반드시 전신마취를 해지 않아도 될 수 있는 환자에게는 부분마취를 공부해가며 시핼 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수술은 물론이고 척추수술까지는 척추마취를 했는데, 수련의 시절에 전신마취에만 의존해서 수술해왔던 외과계열의 군의관들에게 초기에는 반발도 샀지만 실제로 해보니 편안하고 안전하고 좋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게 만들었다.

어깨관절에서부터 팔과 손의 수술은 그 당시에는 어느 대학에서도 시술하지 않던 상완신경총차단(brachial plexus block)을 익혀 시술해서 수술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전신마취의 위험성과 필자의 부담도 줄일 수 있었고 여러 개의 수술실을 동시에 가동할 수 있었다.

이러한 부분마취는 당시에 마취과전문의 5년차였던 필자는 1980. 5.18. 광주민주항쟁 때 아낌없이 발휘 할 수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몽둥이로 맞아 팔이 부러지거나 외상을 입은 일이 많아 수술실이 부족해 수술실까지 들어가지도 못하고 회복실이나 복도에서 부분 마취를 해주어 빠른 처치를 받도록 해주었다.

부분마취의 마지막 단계로 환자들의 목 부위 수술, 특히 갑상선 수술을 경추신경절 차단(cervical plexus block)으로 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해주고 증례를 모아 1983년 대한마취과학회지에 발표하기도 했다.  

평생 수술마취만하며 살고자했던 꿈이 무너진 것은 군복무를 마치고 종합병원에 근무하면서 진료지원과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수입을 올리지 못한다는 병원운영자의 눈총을 받으면서부터였다.

헤어나기 힘든 사람을 죽음에서 구해주어도 환자에게 고마운 존재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병원을 운영하는 같은 의사인 원장에게까지 돈을 벌지 못한다고 무시당하게 되는 현실을 보고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이 아팠다.

수술마취과만을 공부해온 마취과전문의들이 사회에 나오면 취직자리도 흔치않고, 개원한다고 해도 강의에 참가해서 들은 지식이나 책에서 보고 읽은 어설픈 실력으로 개원하는 수 밖에 없는 처지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마취과에서 통증치료를 담당한다고 알려져 있어 종합병원에 약 7년간 근무하면서 통증치료를 해보겠다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통증치료에 관한 자료가 부족해서 어렵사리 찾아 공부를 어느 정도 했다고 생각하고, 그동안 쌓아온 신경차단술만으로 통증치료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1988년에는 근무하고 있던 병원에 통증치료실을 개설해놓고 1년 동안 통증치료를 해보니 일반적으로 알려져 온 교과서적인 신경차단만으로는 통증 치료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즉 마취과적인 신경차단과 통증치료를 위한 신경차단과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공부하고 경험했던 것들을 가지고 1989년도에 통증클리닉을 개원을 해놓고 보니 교과서대로 아파주는 환자는 한사람도 없었다. 혼자서 고민하면서 공부하고 연구해서 얻어진 결과는 여러 사람과 함께 공유하기위해 논문을 만들어 학회지에 발표해왔다.

필자가 발표했던 논문이 임상에서 꼭 필요한 내용임을 알게 된 의사들이 하나둘씩 필자에게 배움을 청해오기 시작했다. 필자는 남을 가르쳐 본 일도 없고 그럴만한 자신도 없었지만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마취과 전문의에 한해 한사람씩 받아드려 있는 대로 보여주고 함께 공부하며 아는 것은 가르쳐 주기위해 최선을 다했다.

햇수가 지나면서 통증에 대해 배우러 오겠다는 의사들이 늘어 가는데 그 의사들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난관에 부딪치게 되었다. 초기에는 그동안 필자가 발표했던 논문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정도를 해왔지만 1:1의 지도에는 한계가 있다 싶었다.

얻어진 지식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기위해 컴퓨터를 배워서 겨우 글 쓰는 정도의 수준까지 배워서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어 모든 체험담과 진료현장경험에서 얻어진 지식을 인터넷에 공개를 하게 되었다. 이렇게 나름의 지식을 공개하는 것은 이러한 경험을 필자가 해보았으니 다른 의사들도 시술해보라는 의미였지 필자가 완벽한 의사라고 자랑하기 위함은 아니었다.

홈페이지 개설 초기에 문전성시를 이루듯이 몰려드는 사람들은 특정과의 의사들이 아닌 모든 진료 과를 망라해서 방문하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묻고 상담해오는 의사들이 많았다.

인터넷을 방문하는 의사들도 적지는 않았지만  의사들보다는 환자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방문해왔다. 필자의 좁은 소견으로는 마취과의사를 위해서 공개한다고 생각했지만 방문객들은 마취과의사들보다는 다른 과 의사들이 더 많았다.

그러나 인터넷을 보는 사람들의 숫자에도 한계가 있다싶었다. 홈페이지에 그동안 올렸던 글을 모아 《개원의를 위한 통증사냥법》이라는 제목의 졸작을 출판하게 되었다. 의술은 지식과 기술의 집합체인데, 지식은 글로 써서 전달할 수 있었지만 기술은 글이나 말로만 전해주는 것이 아니고, 옛 기술자들의 도제제도(徒弟制度)를 통해서만 전달받을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개원한지 20년이 넘었고 후배들을 가르쳐 온 것이 16년이 넘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통증을 찾아 치료해준다는 것이 항상 쉽고 만만한 것만은 아니었다. 지금도 함께 공부해가며 진료현장에서 배우고 있는 후배와 머리를 쥐어 짜내가며 환자를 돌보고 있지만 아직도 수술마취보다 힘들고 어려운 것이 통증치료라고 생각된다.

인터넷이나 필자의 책을 보고 느낀바가 있어 필자에게 와서 직접 기술을 배우고자하는 후배들이 적지 않지만 일개 개원의에 불과한 필자가 모두를 한꺼번에 수용하지 못해서 여러 사람들에게 미안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기회를 잘 잡거나 기다렸다가 배워가서 진료하는 후배들을 보면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마취과전문의 자격증하나만을 들고 통증클리닉을 개원하는 젊은 의사들을 보면 안타까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많은 환자들을 진료하면서 동시에 여러 후배들에게 진료현장을 보여줄 수 있는 대학병원 같은 곳에 가서 근무했으면 좋았겠지만, 대학교수도 은퇴할 나이가 지난 늙은 개원의에 불과한 필자 같은 사람을 어느 강단이나 진료현장에 세워줄 수 있겠는가?

붕어빵처럼 틀에 찍어내어 통증치료를 할 수 있는 의사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손으로 흙을 주무르고 만져서 도자기를 만드는 도예가나, 불에 달군 쇠를 수백 번 이상 두들겨 연장을 만드는 대장간의 대장장이처럼 한계가 있는 것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의사라면 누구나 통증을 치료할 수 있어야하고, 이제는 진료 과의 벽이 허물어져 통증의학이 마취과만의 전유물이 되지못하고 있다. 이름만 마취통증의학과가 아니고, 통증의학에 대한 연구나 치료법이 표준화되지 못하면 통증치료란 분야는 마취과의 전유물이 아니고 아무나 할 수 있는 모든 의사의 진료영역이 될 것이다.

통증치료의학을 전파하는 것이 필자 같은 개원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짐이라고 생각된다. 필자에게 얻어간 씨앗을 뿌리고 가꾸어서 백배이상의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하자고 당부해왔지만 대부분은 그 씨앗마저 까먹어 버리는 사람이 있음을 보게 된다.

아직까지 통증의학이란 완전하게 정립된 것이 없어 치료자에 따라 치료방법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진료기관을 전전해온 환자들을 통해서 들을 수 있다. 하루속히 통증의학이 정립되어 환자들은 어디에 가거나 쉽게 진료 받고 통증으로부터 해방되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2009.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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