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통증클리닉
여의도 통사의원
sub1_menu


 로그인  회원가입

이루어지지 못할 꿈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
최중립  2013-03-06 14:11:43, 조회 : 15,795, 추천 : 2367

흔히들 말하기를 꿈은 이루어진다고 한다. 과연 꿈은 꼭 이루어지라고 있는 것일까? 꿈은 이루어지기 위해 있는 것만은 아니라 깨어지는 꿈도 있고 이루어 질 수없는 망상(妄想)이란 것도 있다.

꿈이 이루어지고 나면 남은 것은 무엇일까?

필자는 어려서부터 유명한 기계공학자가 되는 꿈을 안고, 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가기위해, 고등학교는 지방에 있는 공업고등학교 기계과에 진학했다. 입학하자마자 공업고등학교는 대학진학을 하기위한 교육은 없고 공장에 취직하도록 취업 지도하는 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차적으로 꿈은 제대로 꾸어보지도 못하고 깨어지고만 것이다. 인문계학교로 옮기고 싶었지만 아무데서나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부모님의 꾸지람으로 하는 수 없이 고등학교를 무사히 마쳤지만 대학진학은 마음먹은 대로 쉬운 것은 아니었다.

재수 끝에 어렵사리 대학입학시험을 치르려고 하는 순간 집안 형편이 서울에 유학할 수 있는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가정형편은 고려하지 않고 공부에만 몰두했던 자신이 너무 무지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필자의 꿈은 한 번 더 깨졌다.

지방에서 대학을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마땅히 가고 싶은 곳이 없어 오랫동안 꾸어온 꿈을 접고 궤도수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의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꿈도 꿔본 일이 없었지만  지방에서 대학을 진학할 바에는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이 다닌다는 의과대학을 차선책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입학시험을 치르고 합격은 했지만 당장에 입학금이 없어 4남매를 기르며 봉급생활하는 형님에게 매달려 의예과 1년을 마쳤지만, 2학년이 되어서는 등록금 마련이 늦어져 등록기간이 조금 지나서 돈을 들고 갔지만 등록금을 낼 곳이 없었다.

학교당국에 등록금을 들고 찾아 갔더니 등록기간이 지나서 자동제적 처리되었다는 것이다.
대학교직원들을 찾아가서 사정을 해보아도 한번 제적된 것은 번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교학처장님께 통사정을 해서 제적을 휴학으로 돌려주겠다는 약속을 받았다.

휴학은 조건 없이 복학이 가능하지만 제적생은 정원(T/O)이 비지 않으면 복학이 되지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

이때에 절망이 커서 학업을 포기하고 군대나 가려고 했는데, 지금은 경남진주에서 개원하고 있는 문 성열이라는 친구가 내년에 복학할 형편이 안 되면 자기네부모님께 얘기해서 학비를 대줄테니 학업을 포기하지 말라고 만류해주었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았지만 정말 고마운 친구였다.

군대에 가는 것을 단념하고 ○○광업소에 있는 기계 공작실에 취직해서 기계공원생활을 7개월가량하고, 그 이듬해에 복학해서 의예과 2학년을 마칠 수 있었다.

의예과 2학년을 마칠 무렵 장학금 받은 햇수만큼 군복무를 더한다는 조건을 가진 군위탁장학금 제도가 생겨 장학금으로 학비를 내고 생활비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의과대학 3학년 때 지금의 아내를 만났는데, 너무나도 경제사정이 어려운 필자를 모두 알면서도 그녀는 계속해서 사귐을 가져주었다. 처가댁에서는 딸에게 사귀는 남자가 생겼는데 오래 미루지 말고 결혼시키는 것이 좋겠다고 하셔서 그해 12월에 결혼하고 처갓집의 도움으로 신혼살림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공부하는 데에는 잡념이 없이 지낼 수 있었지만, 가정에 도움이 되기 위해 의과대학 교수님들이 간추려 만들어낸 책 몇 가지를 필경(筆耕)해서 교재로 만들어 우리학급과 후배들에게 공급해서 생활비를 보탰다.  

졸업하고 서울대학 마취과에 들어가 마취과수련을 마치고 1976년에 자랑스러운 전문의 자격을 받을 수 있었다. 전문의로서 7년간의 근 복무를 하는 동안 마취에 대한 대단한 긍지를 가지고 지내면서 상완신경총차단이란 마취법을 완전터득해서 실용화했고, 후배들에게 전수시켜주기도 했다.

또한 극미량(0.25mg.)의 morphine을 경막내(intrethecal)로 투여로 24시간의 수술 후 통증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터득해서 마취과학회지에 논문을 발표한 일이 있고, 경부신경총( cervical plexus block)차단으로 갑상선수술을 실시해서 국내최초로 대한마취과학회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우리 군역사상 처음으로 open heart surgery도 국군 수도통합병원에서 실시했었다.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가졌던 마취과 의사의 생활은 군복무를 마치고 사회에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에 무너졌다.

가까운 곳에 있는 종합병원에 취직을 했는데, 수술실에서 메칠알콜을 사용하고 있어 원장님께 에칠알콜을 사용하면 안 되겠느냐 얘기했다가 완전히 원장의 눈에 벗어나기 시작했다.

수술마취의 특성상 환자의 기본검사결과를 먼저 보고 마취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검사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환자가 수술실에 먼저 들어오는 일이 수두룩했지만 마취를 거부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마취 시에 사용하는 주사기는 일회용이 아닌 유리주사기를 한꺼번에 포장소독해서 한번 사용하고 다시 소독해서 사용하는 시절이었는데, 한번 나온 주사기는 하루 종일 다른 환자에게 반복해서 사용했고 주사기가 뒤범벅이 되어 혼용하고 있었다.

마취의 특성상 혈관으로 주사하는 것임으로 주사기는 일회성 셋트로 준비해서 매번 교체했으면 좋겠다고 건의 했다가 심한 원장의 무서운 눈총이 필자에게 떨어졌다고 한다. 매번 건의 했던 의견들이 원장의 눈에 가시가 된 필자는 3개월을 지나고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다음에 취직한 곳이 인천 시립병원이었는데 피부과교수 출신의사가 병원장으로 들어왔는데, 원장은 매월 간부회의 때마다 각과의 월수입을 공개하면서 방사선과, 임상병리과, 마취과는 다른 과에 비해서 수입이 적으니 수입을 올리도록 분발하라는 문책을 받았다.

전문의 초년생 여자과장들은 매번 회의가 끝날 때마다 울상이 되어 필자에게 어떻게 원장에게 얘기 좀 해달라고 졸라댄다. 대학에서 피부과교수로 있다가 갑자기 종합병원운영을 맡게 된 원장은 임상진료과와 진료지원과의 특성을 전혀 알지 못하고 수입 액수만을 가지고 따졌던 것이다.

서울대학병원의 수술실적 1년간 통계와 의사인원수를 비교해서 우리병원에서 1년간 수술건수를 볼 때 대학병원보다 더 많은 수술을 하는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따지고 다른 진료과도 마찬 가지임을 강조했다.

진료과에서 수입을 올리는 것은 진료지원과의 도움이 있었기에 있을 수 있는 것이지 진료과에서 올리는 수입은 그들만의 공(功)은 아니니 제발 진료지원과를 괄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그런 얘기가 없어졌다.

외과계열의 후배의사들이 들어올 때마다 그들과 비교되는 봉급을 비교할 때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해왔던 마취과가 초라하게 느껴지지 시작했다. 그때부터 어렴풋이 통증클리닉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문헌을 더듬어 공부하기 시작했다.

약 5년 동안 틈틈이 공부해서 병원 내에 통증치료실을 개설했으나 그동안 책에서 공부한대로 아파주는 환자는 거의 없었다. 책에 있는 내용이란 전부가 마취에 사용하는 신경차단에 의존하는 법들이었는데 실제로는 일시적인 마취효과만 있다가 약효가 없어지면 통증은 다시 나타나고 해서 치료의 의미가 전혀 없다는 것을 아는 순간 또 한 번 꿈이 깨어지게 되었다.

다시 기능해부학을 열심히 공부한 결과 통증이 있는 곳과 그 원인은 별개의 장소에 있다는 사실을 약 2년 후에 터득하고 통증유발점이 통증을 일으키는 기전을 찾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1989년 이 자리에 개원하고 나서도 이해할 수 없는 통증에 몇 년간을 시달려야했고, 지금도 가끔은 전혀 낯 설은 통증을 만날 때가 있다.

인생 70년을 살면서 몇 차례나 꿈이 깨어졌던 일이 있었지만 7전8기의 정신으로 살다보니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누적된 때문인지 만성피로증이 심해서 앞으로 진료도 오래 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어렸을 때에는 매년 학년이 올라가는 기대감이 있었고, 좀 더 좋은 상급학교 진학하려는 꿈이 있었다. 수련의가 되어서는 전문의 자격을 따기 위해 매년 올라가는 수련기간에 대한 꿈이 있었고, 군복무 중에는 계급이 하나씩 올라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젊었을 때에는 성취하고자하는 꿈이 있었기에 매년 한 해씩 가는 것이 즐거웠다. 개원을 해서 일반적으로 얘기하는 소원성취가 이루어졌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기대감이나 바라는 것이 없어지게 되니 세월은 무서운 속도로 달리고 있는 것을 느끼게 한다.  50대와 60대라는 나이는 언제 흘러가버렸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깨어질 꿈이라도 품고 살아왔던 젊은 시절이 좋았던 것이 아닌가 싶어진다. 새해를 맞으면서 만나는 사람마다 "건강하시고 소원성취 하십시오."라는 인사를 하는데,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게 한다.  

2013년을 맞아 2월이 지나도록 금년 계획이나 이루고 싶은 꿈을 찾지 못하는 현실이 허무하게 느껴져, 자주 깨어지더라도 꿈을 가졌던 젊은 시절이 그립다.  

                                        2013. 3. 6.



  추천하기   목록보기

번호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59  What do I think?    관리자 2007/07/27 30966
Notice  여의도통사의원 진료시간 안내    오성웅 2016/01/16 27824
Notice  여의도통사의원 비급여 비용 공지    오성웅 2016/01/12 20866
56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그린다......!    관리자 2007/07/19 18497
55  의사는 환자에게 과실이 없다는 재판부의 의료분쟁에 대한 판결문    최중립 2009/04/30 18454
54  통증의학의 평준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모임에 대해서    최중립 2014/01/20 18398
53  통증사냥법 제 4판을 내면서 !    최중립 2014/05/21 17646
52  홈페이지 의료정보 공개범위 안내.    오성웅 2016/10/22 17624
51  여의도통증클리닉이 여의도통사의원으로 새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오성웅 2016/01/07 17046
50  황당스러웠던 boulinus toxin의 주사효과에 대한 소송판결...    최중립 2009/01/01 16261
49  통증치료를 한다는 것이 이렇게 힘들 줄 진즉 알았더라면!    최중립 2011/01/05 16008
 이루어지지 못할 꿈이라도 없는 것 보다는 있는 것이 낫다.  [2]  최중립 2013/03/06 15795
47  젼남의대 어느 후배에게 !    최중립 2014/11/11 15273
46  통증클리닉 개원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말자.    최중립 2008/08/31 15030
45  홈페이지가 개편되었습니다.  [1]  운영자 2007/07/02 14996
44   실패의 진정한 의미    최중립 2009/11/27 14932
43  환자를 진료의뢰할 때에는.....!    최중립 2012/05/01 14892
42  의료사고 입증책임 의료인 전환?    최중립 2009/08/02 14848
41  의사에겐 의무만 있고, 권리는 없는 것인가?    최중립 2013/04/29 14493
40  언제쯤이면 환자들이 안심하고 통증치료 받을 수 있을까 ?    최중립 2009/03/01 14371

    목록보기   다음페이지 1 [2][3]
       

Copyright 1999-2026 Zeroboard / skin by ze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