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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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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19 12:54:27, 조회 : 18,496, 추천 : 2538 |

나는 항상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세상을 꿈꾸며 산다.
강자는 양자를, 있는 자는 없는자를 , 건강한 자는 병약한 자를 배려하고
돌보며 사는 세상이 그립다.
의사는 건강인이기에 병든 사람을 돌보아야하는 것이 직분이다.
그런데 반드시 그런것 만은 아닌듯하다. 오래 전에 적었던 글이지만 새삼스럼게 공감이가서 올려본다.
현대는 이웃과 더 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 아니고 강자는 약자를 짓밟고, 부자는 가난한자의 잔돈까지 뺏어 더 큰 부자가 되는 시대인 것 같다. 슈퍼마켓이 생기면서 동네 구멍가게들이 없어져 가고 있다, 아니 이미 없어졌다고 하는 표현이 나을 것이다.
슈퍼마켓에 가면 물건들이 다양하게 많이 있어 같은 물건이라도 비교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좀 더 싸게 살 수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은 수 십 년간 정들었던 이웃 구멍가게를 외면하게 된 것이다.
요즘에는 세계적으로 체인망을 가진 대형할인 매장들이 국내에 진출하면서 슈퍼마켓들이 울상이다. 할인매장에 가면 물건을 낱개로 판매하지 않기 때문에 박스 채로 사서 승용차에 가뜩 채워서 집에 쌓아놓는다. 동네슈퍼마켓에서는 가끔 필요한 식료품을 소량씩 구매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슈퍼마켓도 대기업에서 체인점형태로 운영하는 곳이 아니면 구멍가게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
우리 의료계도 마찬가지로 재벌그룹들이 의료계에 진출해 대학병원을 설립하거나, 병원재벌들이 줄줄이 의과대학을 세워 병원을 짓고 대학병원간판들을 부치고 있어 소규모 병원이나 동네의원들엔 환자가 줄어들고 있다. 머지않아 의료시장이 개방되면 외국의 재벌병원들이 국내에 진출하면 대학병원들은 물론 우리 의료계전체를 위협을 하게 될 것으로 예견된다.
80년대 후반까지 만해도 개인외과의원에서도 비교적 큰 수술에 해당하는 위 절제수술이나 담낭 절제술들을 많이 해왔고, 신경외과에서는 뇌 손상환자들의 뇌수술을, 정형외과에서는 척추수술을 예사로 해왔다. 그러나 전 국민건강보험의 시작과 함께 대형병원들의 등장으로 환자들은 큰 병원만을 선호하게 되고 대부분의 개인의원들은 영세화되어 수술실과 입원실을 폐쇄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동네의원들도 진료과목에 따라 환자수가 많고 적음이 천차만별이고, 같은 과목을 하더라도 장소와 시설 그리고 경영방법에 따라 환자수가 엄청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개원초기에는 자기 몸은 돌보지 않고 일요일과 공휴일까지 진료하면서 환자 수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필자는 개원초기에 환자 수가 적다고 초조하게 생각하는 제자들에게, 평생을 환자진료 하겠다는 각오로 마음의 여유를 가지라는 당부를 해준다. 그들의 진료능력을 믿고 있기에 시간이 가면 환자는 저절로 늘어가기 마련이고 단골환자도 생길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었다.
하느님께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내라고 하신 말씀 중에는 돈벌이 위해 주일까지 허둥대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 휴식을 취하라는 말씀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의사가 건강해야 환자를 돌볼 수 있는 것이지 의사가 자기건강 지키지 못하면 누가 지켜주겠는가?
필자가 처음 개원하던 1989년도에는 이 근처에 의원 급 의료기관이 별로 없어 통증환자 외에도 외과, 정형외과, 비뇨기과, 내과환자들까지 진료할 수밖에 없었다. 개원 1년 후에 내과 의사가 건너편 건물에 들어서자 감기를 포함한 내과환자는 내과로 모두 보냈다.
몇 년이 지나자 비뇨기과가 한 건물에 들어왔는데 외과진료도 한다고 하여 비뇨가과 환자는 물론, 화상, 봉합환자, 외상 환자의 상처소독도 그곳으로 보내고 있다. 개원하고 5년 후부터는 통증클리닉의 진료대상 환자 외에는 완전히 손을 대지 않게 되니 이웃의 진료영역을 침범할 일도 없어지게 되었다.
필자가 여의도에 처음 개원하려고 할 때 주위의 의사들로부터 마취과의사가 개원하려면 변두리에 가서 일반의(G.P)로 개원해서 내과, 소아과 환자진료나 할 것이지 무슨 배짱으로 여의도에서 통증클리닉을 개설하느냐는 충고 아닌 충고를 들은 일도 있었다.
아마도 자기네의 진료영역이 침범 당할까 우려해서하는 얘기가 아니었던가 싶었다. 오늘에 이르러서는 어느 과의 진료영역에도 들어가지 않고 통증의학과의 위치를 굳히고 있지만 개원 초기에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일본의 소설 “빙점(氷點)”의 작가 미우라 아야꼬 여사의 미담을 소개한다.
그녀는 작가로 이름이 나기 전에는 평범한 가정주부로서 봉급쟁이 남편의 봉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동네에 조그만 구멍가게를 하나 차렸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나 장사가 잘되는지 가게가 날로 번창하면서 트럭으로 물건을 사들여 올만큼 가게도 커지고 장사도 잘되었다.
어느 날 직장에서 돌아온 남편은 일에 파묻혀 정신없는 아내를 한참 바라보다가 “우리가게가 이렇게 잘되는 것은 좋지만 이 주위가 다 어려운 사람들인데 우리가 잘 됨으로써 다른 구멍가게들이 안 되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하였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며칠간 생각하던 부인 미우라 아야꼬는 자기가게의 물건을 줄이고 어떤 물건은 아예 받지 않아 옆의 가게를 도와주었다. 손님들이 찾으면 “그 물건은 저 가게에 가면 있습니다.” 하면서 손님을 나누어주며 함께 하는 삶을 실천하였다.
이웃 간에 서로 배려하여 옆집으로 손님을 소개하다보니 경쟁할 일도 없고 동네 가게들이 모두 장사가 잘되게 되었고, 이웃 간의 화합도 잘되고 동네분위기가 좋아지게 되었을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가게를 줄이면서 시간적 여유가 생긴 미우라 아야꼬는 틈틈이 펜을 들어 작품을 썼으니 그것이 바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빙점(氷點)“이라는 소설이었다. 더 불어 함께 하는 삶, 너를 생각하는 삶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삶인가? 정말 아름답고 흐뭇한 이야기이다.
우리 의료계에도 “저는 잘 모르겠으니 저보다는 건너편에 있는 의사에게 가면 더 잘 봐주실 것입니다. 그 쪽으로 가보시지요“하는 분위기가 그립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국가는 국민을, 강자는 약자를, 어른은 아이를,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대형병원은 영세한 동네의원을, 환자가 많은 의사는 환자가 적은 이웃 의사를, 의사는 환자를 배려하며 더 불어 함께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본다.
2002. 10.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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